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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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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비밀의 정원에도 붉은 단풍 들었노라 

 

 

바쁜 당신도 단풍을 즐길 권리가 있다 

푹푹 찌는 여름을 몰아내준 기특한 가을 바람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겨울 옷을 끄집어 내고 있다. 매년 기별만 비치고 사라지는 가을처럼,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 단풍놀이도 길어야 2주, 조금만 어영부영하면 놓치기 십상이다. 매년 올해는 꼭 가고 말리라를 다짐하지만, 여차 저차 한주만 미뤄져도 그새 아름다운 단풍은 낙엽이 되어 사라지고, 우리는 또 다시 내년에는 꼭...을 중얼거리게 된다. 

 

 

▲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창덕궁 입구. 창덕궁은 궁궐 중 단풍이 가장 늦게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 매년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10월 말에는 바쁜 일이 많이 생겨 그 시기를 놓쳐버리고 만다. 올해도 이것 저것 일이 겹치는게 왠지 불안하다. 아파트 단지내 단풍도 예쁘지만, 뭔가 단풍놀이를 왔다는 느낌이 부족하고, 단풍과 한옥의 조화를 좋아하는데 동네 뒷산이나 공원에서 그런 운치를 기대하기는 여렵다. 이러다 또 단풍 한번 제대로 감상 못하고 가을을 보내는건 아닐까? 초조해하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곳이 있었다. 도심에 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고요하고, 푸르른 나무들이 한옥과 멋드러지게 어울려있던 곳이 생각났던 것이다. 

창덕궁 후원, 비원이라고도 부르는 이 비밀의 정원이 그 해답. 모든 갈증을 해소시켜줄 곳이 서울 한복판에 있었다.

 

  

 

창덕궁의 숨겨진 비밀 정원, 후원

 

 

비밀의 정원에는 혼자 들어갈 수 없답니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창덕궁의 '비원(秘苑)'은 사실 일제강점기의 잔재. 따라서 최근에는 모두 '후원'이라고 부르는 추세다. 그러나 그 이름이 어떠하든, 창덕궁 뒤에 은밀히 숨겨져 혼자서는 들어갈 수 조차 없는 이곳은 '비밀의 정원'임이 분명하다. 

현재 후원은 가이드를 동행한 '제한관람제'로만 운영되고 있다. 내가 이 사실을 안 것은 어이없게도 스위스인 친구들을 통해서였다. 예약 없이 창덕궁을 찾았다가 투어가 남아있지 않아서 결국 허탕을 치고 말았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던 것.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창덕궁과 종묘는 입장 인원수가 제한되어 있으니 미리 예약할 것, 겟어바웃 독자 여러분은 잊지 마시길 바란다. 

한 가지 희소식은, 봄과 가을에 열리는 '창덕궁 후원에서 만나는 한권의 책' 행사 기간에는 자율 관림이 가능하다는 사실. 하루 15번, 회당 200명씩 입장 가능하다. 후원 내 영화당, 존덕정, 취규정, 농산정 4개의 정자에 각 200권 씩 도서를 비치해 둔다고 하니, 아름다운 단풍이 물드는 후원에서 책과 함께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2013년 10월 22일 ~ 11월 3일까지)

 

 

 

자연, 정복하지 말고 더불어서 

그러고보니 스위스 출신 오이군에게 창덕궁은 소개해 준 적이 없는 듯하여 나도 오랜만에 오이군과 함께 창덕궁으로 향했다. 
아직은 단풍이 살짝 이른 시기였지만 이제 막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여 녹색, 연두색, 노란색, 붉은색이 어우러진 풍경은 또 화사한 매력이 있었다. 봄꽃 피는 계절의 화사함과는 또 다른, 가을만의 서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였다.  

 

 

 

베르사유 궁전의 또박또박 잘 깎인 정원이나 자연을 축소해 놓은 모습의 일본식 정원을 상상하며 왔다가, 전혀 다른 모습의 정원에 신기해하는 오이군. 그렇다. 이곳 후원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한국의 색이 스며있다. 

유럽식의 정원들도 아름답긴 하지만 보고 있으면 어딘가 로보트가 생각난다. 인위적으로 모양을 낸 버섯모양의 나무들과 열맞춰 심겨있는 꽃들. 재미있긴 하지만, 인위적인 느낌이 강해 자연속의 휴식보다는 인간의 지구 정복이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일본식 정원도 자연의 모습을 축소하여 담아 놓았다지만, 그 때문에 역시 인위적인 미니어쳐 마을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그런데, 후원을 보고 살짝 놀라고 말았다. 처음에는 어딘지 투박한 모습에 이것을 정원이라 부르는가? 싶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정원이라기 보다는 작은 숲이었기 때문이다. 숲 사이에 길이 나 있고, 작은 정자들이 놓여 있다. 군데, 군데, 한옥들이 지어져 있는데, 주변에 심긴 나무들은 시골의 숲에서 보던 그것들과 다를 바 없이 편안(?)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만히 앉아 주변을 바라보니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내가 있는 곳이 산골인지 서울 한복판인지 알 수도 없었다. 자연을 정복하고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와 어울려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이 정원의 모습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던 우리 선조들의 조화로운 마음이 아니었을까?

 

 

   

 

자꾸만 열고 싶어지는 은근한 매력, 문

우리의 한옥에 또 다른 매력을 더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문이다. 열고 열고, 또 열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양파같은 한옥. 부드러운 창호지에 담기는 햇볕과 언뜻 비쳐보이는 내부의 실루엣. 사람도 이렇게 은근한 사람이 더 매력있는 법 아니던가.  

그런데 이곳에는 조금 특이한 문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불로문'이 그것인데, 왕의 무병 장수를 기원하며 커다란 돌을 깎아 만든 문이라고 한다. (위 사진 우측) 그 노력이 애틋하기도 하고 부질없게도 느껴졌지만 어느새 건강하게 오래 살아보겠다며 그 아래를 지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창덕궁과 창경궁, 은밀한 미로 같기도 정겨운 골목 같기도

 

 

후원관람을 마치고, 오이군과 함께 창덕궁과 창경궁을 보러 들어왔다. 어릴적엔 관심 없이 봤던 궁들이 어쩌면 이렇게 멋지고 화려한지!

그 중에도 창경궁은 다른 궁들과 그 구조가 많이 달라 인상깊었다. 예전에 어떤 영화에서 궁을 미로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곳을 보니 그 영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다른 궁들은 모두 넓직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창경궁은 넋놓고 다니면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좁은 통로가 많고, 비슷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화려한 궁궐임에도 어딘가 정겨운 동네 골목길이 떠올랐다. 

 

 

  

아직도 화사함을 자랑하는 이름모를 꽃들과 막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나뭇잎, 그리고 화려한 단청이 한데 어우려져 가을의 궁궐은 그 자체로 축제 같았다. 예전에는 기와가 검은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수많은 색들이 검은 기와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아름답게 돋보일 수 있었을까? 

만약 올 가을 먼 곳으로 단풍놀이 가기에 시간이 벅차다면, 가까운 고궁 단풍놀이를 노려보자. 생각지도 못한 화려한 아름다움이 일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줄 것이다. 

   

 

INFORMATION

 

창덕궁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2-71

- 가는 법 : 홈페이지 참조 http://www.cdg.go.kr/info/info_map.htm

- 후원 자유관람 '창덕궁 후원에서 만나는 한권의 책' 행사 기간 : 2013. 10. 22 ~ 11. 3 

- 창덕궁 후원 가이드 투어 예약 : http://www.cdg.go.kr/main/main.htm

 

 

 

정보제공 | Get About 트래블 웹진
토종감자 토종감자

틈틈히 세계를 구경하는 야채 부부. 한국 토종감자와 스위스 수입오이로 만든, 고소하고, 상큼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토종감자 수입오이의 세계여행' www.lucki.kr 이란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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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전 어제 다녀왔습니다....이제 슬슬 단풍이 아름다워지고 있더라구요....
    관람정 주변의 참나무들이 병이 들어서 맘이 아팠지만
    우리나라다운 궁에 우리나라다운 후원...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김미정 2013.11.0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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