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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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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샤갈 아저씨의 작품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카페를 좋아했었고, 한때 좋아했던 친구와 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샤갈전>을 관람하기도 했었다. 밝은 색채와 따뜻한 분위기, 그러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의 구성은 너무 사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추상적이지도 않은 경계에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메시지를 선사해주고 있었다.

니스 여행을 하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역시 샤갈 미술관이었다. 샤갈이 살아 있을 때 만들어진 미술관. 앙드레 말로가 문화부 장관이었을 때 샤갈의 그림을 모아서 그가 살던 니스에 미술관을 세웠다. 원래 샤갈은 니스가 아닌 생 폴 드 방스(St. Paul de Vence)에 미술관이 지어지길 바랐지만 당국과의 협의가 원활하지 않아 결국은 니스에 세워졌다고 한다.

 

 

샤갈 미술관에 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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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 중앙역에서 걸어서 약 10~15분이 소요되는 샤갈 미술관은 니스의 주택가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우리가 자주 접했던 샤갈의 작품보다는 말년에 그가 그렸던 성서 이야기로 이루어진 미술관이기도 하다. 니스의 골목을 굽어 굽어 올라가면 곳곳에 샤갈 미술관 이정표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길을 잃어버릴 때 즈음에 하나씩 나타나는 이정표 덕분에 길치인 나도 미술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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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미술관의 간판이 보이고 10개가 채 안 되는 나지막한 계단을 내려가면 아주 크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관리해 놓은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정원을 지나 갤러리로 들어가니 말년의 모습으로 보이는 샤갈 아저씨의 사진이 눈에 띄었고, 반대쪽에는 시기별로 그가 추구한 작품 세계에 대한 설명이 아크릴 판위에 예쁘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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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성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생각보다 작품의 사이즈가 커서 처음 보는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압도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샤갈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연인이나 에펠탑, 동물의 모습을 볼 수 없어도 사용한 색채와 붓 터치, 구도 만으로도 ‘샤갈 작품이구나’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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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은 1887년 러시아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첫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청어 상인 밑에서 일을 했고 어머니는 집에서 야채를 파는 상인이었다. 열심히 일해도 생활고를 벗어나지 못 했던 그의 가정. 이후 샤갈은 ‘존경받지 못하는 그의 아버지’를 생선 모티브를 통해 표현하기도 한다.

1906년에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예술의 중심지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를 간 후 그곳의 예술 학교에서 본격적인 미술 교육을 시작한다. 러시아에서는 자연주의적 초상화와 풍경화를 그렸고 실험극장과 폴 고갱의 작품을 접하기도 한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이야기 하라면 단연코 그의 연인이었던 벨라 로젠벨트를 이야기할 수 있다.

샤갈이 쓴 <나의 삶>이라는 글에서 그녀와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녀의 침묵은 내 것이었고, 그녀의 눈동자도 내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내 어린 시절과 부모님, 내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1910년 이후 프랑스로 넘어가 본격적인 미술 활동을 시작한다. 예술을 위해 파리에 왔지만 언어의 장벽과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진 상태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그에게 큰 외로움과 고독을 가져다주었다. 그 당시 파리는 입체파가 유행이었지만 샤갈은 자신이 구축한 감성적이고 화려한 색채를 고수한다. 프랑스에서 작업한 그의 작품에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이 많은 것도 벨라를 그리워하는 그의 마음이 많이 함축되어 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산업 혁명 이후 베를린을 거쳐 파리로 돌아와 프랑스에 귀화한 샤갈은 선명한 색채, 사람과 동물을 섞어 환상적이면 서도 신비한 그림을 시작하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초현실주의의 문을 열어 준 작품이라고 하지만 정작 샤갈은 그런 사조를 부정했다. 그리고 프랑스 남부, 생 폴(St. PAul)에 머물며 사랑과 기쁨에 관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니스 샤갈 미술관에 있는 성서 시리즈는 샤갈이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녀온 후 그린 작품들이 대다수이다.

 

미술관에서 특별히 인상깊었던 작품 두 점을 소개한다.

 

 

<이삭의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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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의 손가락을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칼을 쥔 아브라함의 손가락은 6개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이야기를 하는 천사의 오른 손가락이 네 개인 것과 대조된다. 샤갈의 작품에서 손가락 또는 손은 능력을 나타내는 '기호' 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손가락을 여섯 개로 표현한 것은 신의 영역에 대한 애정으로서의 인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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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색채의 사용도 선명히 구분되는데, 우측 상단 하늘에 속한 천사의 영역은 빛나는 흰색으로 표현했고, 신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삶에서 안전한 영역은 푸른색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파토스의 순간에서 아브라함은 붉은색으로 표현되어 격양된 느낌을 전달한다. 이삭은 노란색으로 표현되었는데, 이것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인간의 창조>에서 천사의 손에 들린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율법의 석판서를 받는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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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샤갈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유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에칭 판화를 제작하는 것처럼 표현된 작품이다. 샤갈 머리 위의 빛을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훨씬 더 선명하게 선으로 표현해 놓고, 몸이나 다른 빛의 선들도 판화로 만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석판서를 들고 있는 신의 손은 마치 유아의 손처럼 작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샤갈이 야훼에 대해 느끼는 의존의 느낌들이 담겨 있는 '기호'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유아는 자신을 돌보는 부모에 의해 욕구가 충족되고, 이로 인해 유아 스스로가 전능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말하는 의견이 있다. 샤갈은 유아가 경험하는 전능함의 느낌을 신의 손으로부터 투영하면서 모세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묘사했다는 관점의 해석을 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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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밖의 작은 연못 한 쪽 벽에는 샤갈의 모자이크 벽화가 새겨져 있고 연못 아래로 벽화가 투영된 실루엣이 보였다. 이 또한 계획된 작품이었으리라. 모자이크 벽화에는 12개의 별자리가 새겨져 있고 가운데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태양의 전차를 탄 예언자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다. 커플로 방문했던 관람객들은 가죽 쇼파에 앉아 창문 너머로 보이는 샤갈의 모자이크를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았다. 유명하거나 예쁜 작품이면 의례히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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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영역의 예술 작품을 시도한 샤갈

 

샤갈은 말년에 그림과 조각이 아닌 자신의 예술적 한계를 넘어서고자 천착했던 도자기, 스테인드글라스, 모자이크 외에 태피스트리에도 주목했다. 그의 태피스트리는 그의 원화와 드로잉을 바탕으로 프랑스 고블랭 국립 태피스트리 제작소와 이베트 코키유 프랭스(Yvette Cauguil-Prince)라는 태피스트리 전문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예술로 태어났는데 때마침 샤갈의 태피스트리전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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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피스트리(tapestry)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카펫과는 다른 일종의 '이동식 벽화'이다. 벽 장식을 위한 미술품이기 때문에 씨줄과 날줄에 여러 가지 색실을 장착해 이를 짜 그림을 만들어내는 고난도의 공예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실에는 그의 오리지널 작품과 태피스트리로 제작된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멀리서 보면 어느 것이 유화이고 어느 것이 태피스트리인지 모를 만큼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났고 정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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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샤갈의 실제 작품, <오른쪽> 태피스트리 작품

 

니스 주택가 한쪽에 세워진 샤갈 미술관은 오롯이 그를 위해 세워진 미술관이었다. 한 화가의 전성기 시절의 작품은 볼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의 말년의 작품과 삶을 만나는 것은 관람객들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곳. 사회적인 지위, 명성, 부를 위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렸던 그림이 아니라, 꼭 한 번은 그려보고 싶었던, 표현해보고 싶었던 그림을 마음껏 표현했다는 점에서 샤갈 미술관이 가지는 의의는 실로 대단하다. 미술관의 작품만큼이나 건물과 정원도 아름다웠던 샤갈 미술관. 위대한 화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꼭 한 번 방문해보길 바란다. 화려한 화가의 작품 이면에 숨어 있는 그의 인간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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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샤갈 미술관(Musee Marc Chagall )

address: Musee national Marc Chagall, 36 Avenue Dr Ménard, 06000 Nice

website:  http://en.musees-nationaux-alpesmaritimes.fr/

입장료: 9유로 (여권 지참시 오디오 해설기를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 여권 복사본은 안됨.)

입장시간: 월-금 9:00 am - 4:30 pm

 

정보제공 | Get About 트래블 웹진
헤일리 헤일리

유럽 아일랜드에 거주. 디자인 리서처. 여행속에서 일상을 경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즐겨한다. 다수의 사람들보다는 소수의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며 본인의 엉뚱한 성격을 사랑한다. http://blog.naver.com/hailey_h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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